직장 내에서 '열정'은 이상적이고 당연한 자질로 여겨져 왔습니다. 특히 중간관리자인 팀장은 조직의 전략과 팀원 사이에서 열정을 통해 모든 것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러나 실제 업무 환경에서 열정은 단순히 긍정적인 자산이 아니라, 심리적 부담이자 감정노동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팀장의 입장에서 바라본 '열정'의 양면성과 그것이 팀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탐구해보고, 건강한 열정 문화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중간관리자의 현실과 열정 기대치
기업에서 중간관리자, 즉 팀장이라는 역할은 단순히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를 넘어선 존재입니다. 조직의 방향성과 전략을 팀에 전파하고, 팀원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데에 책임을 져야 하며, 때로는 갈등을 중재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팀장이 되면 곧바로 따라오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열정적인 태도’입니다.
현대의 많은 기업문화는 팀장의 열정을 조직의 성과와 직접 연결 지으며, 조직의 분위기 조성 역시 팀장의 열정에 달려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기대는 팀장 개인에게 막대한 감정노동을 요구합니다. ‘지치지 않는 리더’, ‘항상 긍정적인 사람’, ‘팀원을 동기부여하는 에너지 원천’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모든 이미지가 진정성 없이 외부로 보여지기 위한 퍼포먼스로 변질될 때 발생합니다.
열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에너지이며, 지속 가능해야 진정한 리더십 자산이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팀장들은 그 열정을 연기합니다. 월말 실적 압박, 상사의 무리한 지시, 팀원 간 갈등, 수시로 변하는 목표 설정 등 수많은 업무적 부담 속에서도 웃음을 유지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죠. 이는 실제 감정과의 괴리를 낳으며, ‘감정의 분리(disassociation)’ 상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좋은 리더’의 역할에 몰입한 결과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연기된 열정이 조직 내에서 표준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점입니다. "팀장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감정 기복 있으면 팀원들이 불안해해"라는 말들은 팀장의 감정 표현 자체를 억제하며, 내부적 번아웃을 유발합니다. 어떤 팀장들은 심지어 병원 치료를 받거나, 조용히 퇴사를 결심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완벽한 리더지만, 내면에서는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결국 열정은 리더십의 덕목이자, 조직이 만들어낸 압박의 상징이 됩니다. 자발적인 열정이 아니라, ‘보여줘야만 하는 열정’이 될 때 팀장은 더 이상 사람을 이끄는 리더가 아닌, 조직 시스템에 맞춘 감정노동자가 되는 것입니다.
열정 강요와 팀 운영의 갈등
조직에서 열정은 종종 생산성과 동기부여의 필수 요소로 강조되곤 합니다. 특히 팀장이 보여주는 열정은 팀 전체의 사기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따라서 팀장이 열정을 보이지 않는다면, 곧 팀 전체가 침체되거나 무기력해질 것이라는 불안이 작동합니다. 문제는 이 같은 논리가 사실이 아니며, 심지어 조직 내 여러 폐단을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열정을 요구하는 분위기는 팀 전체에 감정의 위선을 강요합니다. 팀장은 웃으며 회의를 주재하지만 속으로는 지쳐 있고, 팀원들은 본인의 일에 진정한 흥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척'을 해야 합니다. 감정의 불일치는 신뢰 저하로 이어지며, 결국 구성원 간 깊은 소통 단절이 생깁니다. 또한 열정이라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른 성향이 왜곡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한 팀원은 조용히 맡은 바 업무를 책임감 있게 수행합니다. 그는 말이 없고,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실적은 좋습니다. 반면, 또 다른 팀원은 아이디어를 자주 제시하고 활발하게 회의에 참여하지만, 결과는 미비합니다. 조직은 후자를 ‘열정적인 인재’로 간주하고, 전자는 '소극적'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평가 방식은 팀장으로 하여금 편향된 리더십을 유도하고, 구성원 개개인의 스타일을 무시하게 만듭니다.
또한, 열정을 기준으로 한 평가는 오히려 반감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팀장이 열정 없는 팀원을 나무라거나, 추가적인 업무를 분배하며 '열정으로 보답하라'는 식의 메시지를 전할 경우, 팀원은 업무를 자율적으로 수행하기보다, 생존을 위한 퍼포먼스를 하게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진정한 몰입은 사라지고, 직장 생활은 감정 소비의 연속이 됩니다.
실제 HR 리서치에 따르면, ‘열정 기반 평가 체계’를 가진 기업일수록 직원의 번아웃과 퇴사율이 높고, 조직 내 감정적 위선 비율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업무 성과와 학습, 자기 주도적 성장에 집중하는 조직은 구성원의 만족도와 충성도가 높게 유지됩니다.
팀장이 이런 환경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열정’ 자체를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각 팀원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춘 맞춤형 리더십을 전개해야 합니다. 감정을 통제하거나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팀을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강한 조직을 만듭니다.
건강한 열정 문화 만들기 위한 리더십
진정한 리더십은 감정의 진정성과 구성원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열정을 강요하지 않고, 팀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방식으로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팀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열정을 자율성과 연결해야만 그것이 지속 가능하고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팀장은 먼저 스스로의 감정을 직시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출발점입니다. 감정의 피로를 억누르기보다는 그것을 인식하고 조절하려는 시도가 중요합니다. 팀장이 인간적인 면모를 보일수록 팀원들은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끼고 감정 표현에 있어 솔직해질 수 있습니다.
둘째, 열정에 대한 기준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열정의 기준은 외향성과 적극성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정은 꾸준한 실행력, 고도의 집중력, 책임감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팀장이 이런 다양한 열정의 형태를 이해하고, 업무 평가에 반영해야 구성원의 자율성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셋째, 팀의 감정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업무 리뷰나 회고 미팅에서 단지 성과만을 이야기하지 말고, "최근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얼마나 몰입하고 있나요?" 같은 질문을 통해 팀원들의 감정적 반응을 청취해야 합니다. 감정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구성원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며 심리적 안정감을 얻게 됩니다.
넷째, 열정과 성과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활발하지 않더라도 탁월한 결과를 내는 구성원은 분명 존재합니다. 반대로, 감정적으로 뜨거워 보여도 실적이 부진한 경우도 많죠. 팀장은 이런 차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감정이 아닌 데이터와 결과에 기반한 피드백을 제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조직 차원에서 열정에 대한 보상과 인정 체계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열정을 연기하는 사람보다, 꾸준히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사람에게 진정한 보상이 돌아갈 때 비로소 조직은 건강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열정은 본질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그 수단을 자율성과 연결했을 때, 열정은 번아웃의 원인이 아닌 조직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요약 및 Call to Action
열정은 팀장의 리더십에서 중요한 에너지이지만, 그 방식과 맥락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보여주기식 열정은 오히려 팀장을 지치게 하고, 구성원을 소외시키며, 조직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습니다. 진정한 열정 문화는 감정의 자유, 자율성, 다양성 위에 구축되어야 하며, 팀장은 그 방향을 설계하는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당신의 팀은 어떤 열정을 갖고 있나요? 진짜 열정입니까, 아니면 연기입니까?